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례 이사금 (문단 편집) === [[이서고국]]과의 전쟁 === >14년(297) 봄 정월. 옛 [[이서국]](伊西國)이 [[금성(동음이의어)|금성]]을 공격해 왔다. 우리 측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방어했으나 물리치지 못했다. 문득 이상한 군사들이 왔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사람들이 모두 [[대나무]] 잎을 꽂고 있었다. 우리 군사와 함께 적을 공격해 격파하였는데, 후에 어디로 간지를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대나무 잎 수만 장이 죽장릉에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로 인해 나라 사람들이 이르기를 [[미추 이사금|“선왕(先王)]]이 음병(陰兵)으로써 싸움을 도왔다.”고 했다. >---- >《[[삼국사기]]》<유례 이사금 본기> 297년에는 [[경상도]] 지역 안쪽,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일대의 소국으로 비정되는 이서고국과 [[전쟁]]이 일어났고, 결국 신라가 [[승리]]하면서 이서고국은 [[멸망]]했는데 그 과정이 묘하다. 이서고국은 [[서라벌]] 근처의 작은 나라였는데 이런 나라의 공격도 신라가 제대로 방어를 못해서 서라벌까지 위협받다가 정체 불명의 병사들이 나타나서 이서고국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체 불명의 병사들은 모두 머리에 [[대나무]]를 꽂고 있었고 [[전투]]가 끝난 뒤 홀연히 사라지길래 뒤를 따라가보니 [[미추 이사금]]의 능인 '[[미추왕릉|죽장릉]]'에 대나무들이 수두룩하게 놓여져 있어서 [[무덤]] 속에 누워있는 미추 이사금이 보낸 [[귀신]] [[병사]]들이었다라는 게 기록의 내용이다. 학자들은 이를 미추 이사금의 세력, 즉 [[김(성씨)|김씨]]들의 [[사병]]으로 추측한다. 이서고국과의 전투는 본래 석씨 왕인 유례 이사금의 주도하에 석씨 세력들 중심으로 진행되다가 신라 전체가 아닌 석씨 세력의 전력으로만 상대하다보니까 의외로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되려 위기에 빠지자 유례 이사금이 결국 김씨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김씨 세력의 사병들이 출동해 이서고국을 멸망시켰다는 해석. 이는 역으로 보면 이 때부터는 비록 석씨 세력이 왕위에 있어도 [[군사력]]이나 여타 권한이 상당히 약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이와 관련된 전승으로 이서고국이 신라를 침공했을 때 [[금관국]]의 왕 [[거질미왕]]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거질미왕이 "너네 신라 땅에서 안 꺼지면 내가 너네 공격한다?"라고 이서고국을 [[협박]]해서 물러나게 했다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실리지 않아 정식 [[사료(역사)|사료]]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삼국사기》에서는 더 이상의 이서국과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나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후 신라의 반격으로 결국 이서국은 멸망하고, 신라의 세력권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